어머님 과 아버님 추억

제주 육군제1훈련소 아버님 의 발자취

연당 2023. 3. 27. 22:48

                     이번 제주도 탐방은 아버님에 발자취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아버남은 1947년 20세에 영월 우체국 5급 서기로 근무하셨다 (서무 보험 우편담당)

1950년 3월4일 남면 연당리 처가에서 무남 독려이신 어머님과 혼례를 치루시며

남자 집에서는 그해 가을 9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조 하셨다(그시절에는 그게 풍습이였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우리 국군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소리소문없이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3개월간 아버님과 어머님 남동생과 3명이서 대구까지 피난생활을 하시면서

낙동강 도강을 불허하여 그해 10월 아버님만 고향에 귀향 하셨다

1951년 아버님은 직장에 복귀 하셨고 어머님은 본인을 임신중임에도 대전 대구를 

전전 하시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셨다고 증언하셨다

1951년 3월12일 연당리 돌고개 외가집에서 내가 출생했다

1952년 11월4일 년년생으로 여동생이 출생하였다

아버님은 내가 태여나고 여동생 임신중에 군 입대를 하시게 되였다

1952년 6월15일 응소 (군소집) 하셔서 포항을 거쳐 제주도 제 1 훈련소 8중대2소대

신병교육 수송학교를 수료 하시고 

새롭게 창설된 29사단 수송중대 에 배치되셨다 

그시절 필체좋으시고 공부좀 하셨다고  하사관으로 권하여 그렇게 장기하사로 

강원도 양양 원통 인제 금화 경기도 포천 신북면 서제리 까지 부대따라

살림을 옮기셨다 함 (결혼을 하셔서 년년생으로 여동생이있어 나는 할머님 께서 키우시고

쫄병 이였지만 여동생과 함께 영외 거주를 하셨다고 함)

1956년 경기도 포천군 신북리 29사단 부대 앞에서 생활 하실때 부모님과 첫 상봉을 하였다

1957년 5월16일 제대를 하셨으나 장기 복무로 직장에 복귀가 안되는 바람에

경기도 운천 야미리 부대 앞에서 부터 아버님에 파란 만장한 객지 생활이

시작 되셨다고 함 이하 생략

아버님 께서는 자신이 직접 쓰신 삶의 발 자취를 남겨 두셨다

살아 계실때 가끔 직접 듣기도 하여 이번 제주도 육군 훈련소를 찾게 되였다 

봄비가 내리는 이날 일행들은 차에서 기다리고 나혼자 우산쓰고 그시절을 회상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시절에 훈련소 정문은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다

추억에 기록 사진들

실제로 그시절 훈련소 정문을 남겨 역사를 기록하고있다

그시절 정문들이 이렇게 남아있어 아 여기가 제주도 육군 훈련소 였구나를 유추해 볼수있다

평화의 터 추모탑

강병대 건물이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나 현제는 철시중

이건물도 살아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으니 영원히 보전 하면서 사용할수 있는

좋은 안을 가지고 후대에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뼈아픈 역사이며 보리 고개를 넘으시며 부모님 세대들이 일구워 놓으신 기적같은 대한민국

그 밑에서 부모님과 함께 고통을 함께하며 이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열심히 살아온

625 세대들 국가와 가정과 배고픔을 이겨가며 여기까지 달려왔으나

야속하게도 꼰대 소리를 듣게된 또한 그렇게 부르는 너희들은 진정 얼마나

조국을 위하여 노력들 하였나 과거없이 현재없고 현재없이 미래없다

풍전등화 같은 세계 질서속에 내부 총질말고 제발 정신들 차리고

너희들 후세들을 생각해서 정신 차리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주길

이 촌로 진심으로 부탁하노라

감사합니다.